영화 청설(聽說, Hear Me)은 제목부터 참 오묘합니다. 청설은 "듣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정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를 가진 양양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티엔쿠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습니다. 장애(障礙)를 다룬 영화들은 종종 ‘극복(克復)’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설은 다릅니다. 이 영화는 장애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라보는 편견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꿈 그리고 사랑이 가진 힘까지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혹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과연 이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서로에게 존중이 넘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세 가지 포인트에 대해서 이야기해 나눠봅시다.
소통, 그 경계를 허물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대사 없이도 감정(感情)을 전하는 순간들입니다. 청설(聽說)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몸짓'으로, 영화 속 대부분의 대화는 수어(수화)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낯설 수도 있지만 계속 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점점 편안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인공 티엔쿠오는 처음엔 양양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만 그는 점차 그녀의 언어를 배우고 단순한 말이 아닌 행동과 표정을 통해 감정을 교류하는 법을 익혀가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비장애인인 티엔쿠오가 장애인의 언어에 맞춰가면서 관계는 더 깊어집니다. 영화에서 소통의 의미는 단순히 ‘말이 통한다’는 것을 넘어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진심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티엔쿠오는 점점 양양과 가까워지고 두 사람 사이에는 말보다 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장애인과 소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소통’이란 서로의 방식에 맞춰가려는 노력이지 특정한 틀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는 편견을 이 영화에서는 부드럽게 없애줍니다. 우리는 종종 ‘소통’이란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티엔쿠오가 양양의 언어를 배우려는 모습 그리고 그녀가 손짓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하는 장면들을 보면 소통이란 것이 얼마나 섬세하고 진솔한 과정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끝난 후에는 아마도 우리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갔던 누군가의 몸짓과 표정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애인도 꿈을 향해 달릴 권리가 있다
양양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 속 ‘여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녀는 수영선수로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는 노력형 주인공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종종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양은 그런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영화 속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영화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과 보호일까, 아니면 동등한 기회일까?라는 것을 말입니다. 양양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가 그녀에게 씌우려 하는 한계를 끊임없이 깨부수고 있습니다. 그녀가 수영을 하는 모습은 단순한 운동 장면이 아니며 그것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명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도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양양은 대회 준비를 하며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훈련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장애를 이유로 참가 자격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들과 그녀를 응원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녀의 여정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있는가?”라며 묻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꿈을 꾸고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영화는 조용하게 그러나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차이를 초월한다
이 영화는 사실상 ‘사랑 이야기’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티엔쿠오는 양양을 특별한 존재(存在)로 여기지 않으며 그녀를 동정(動靜)하지도 특별 대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저 그녀를 ‘양양’이라는 사람으로 보기만 할뿐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장애를 ‘관계의 걸림돌’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편견을 가볍게 무너뜨립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존중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장애는 관계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본래 언어보다 감정이 앞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姿勢)를 티엔쿠오와 양양의 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 간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도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사랑은 결국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장애가 있고 없고는 그 과정에서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또 얼마나 강력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영화를 보기 전과 본 후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수어(수화)가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質問)을 품었다면, 영화가 끝난 후에는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종종 장애를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동정하거나 특별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설은 그 생각이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일깨워줍니다. 영화 속 양양은 장애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눕니다. 그녀는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인물이며 그녀가 세상의 편견과 싸우면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장애가 결코 한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랑이란 것이 결국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에 있어 중요한 건 장애 여부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진심이라는 걸 영화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쩌면 바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장애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하나의 차이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영화 청설(聽說)은 말합니다. “장애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은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