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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 드러머, 음악과 감정의 결합, 희생

by 이자이 2025. 3. 29.

2014년에 개봉한 위플래쉬는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예술(藝術), 열정(熱情) 그리고 집착(執着)이 어떻게 사람을 극한(極限)으로 몰아붙였을 때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러머인 주인공 앤드루(마일즈 텔러)가 최고의 드러머를 목표로 치열하게 훈련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특히 드러머와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위플래쉬는 단순한 훈련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예술(藝術)을 향한 집착(執着)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드러머의 관점(觀點)에서 위플래쉬를 분석(分析)하고 이 영화가 예술(藝術)과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드러머로서의 극한 훈련 - '위플래쉬'의 리듬과 반복

영화에서 앤드루는 테렌스 플래처( J.K. 시몬스) 교수의 지도 아래 끝없이 반복(反復)되는 훈련과 리허설을 겪습니다. 플래처 교수는 매우 엄격(嚴格)하고 그의 방법은 때로는 지나치게 가혹(苛酷)하게 느껴집니다. 드러머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에서 묘사되는 훈련의 일부는 실로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입니다. 드러머는 타악기(打樂器) 특성상 반복적인 연습과 리듬을 몸에 익히는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영화에 비친 모습처럼 그 과정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압박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영화에서 앤드루가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장면은 단순히 ‘음악적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한계(限界)를 시험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타악기 특성상 반복적이고 강한 리듬을 다루는 일이 많기 때문에 신체적 피로와 함께 정신적 압박이 따릅니다. 이 영화는 드러머가 얼마나 몰입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몰입이 어떤 형태로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앤드루는 음악적 완벽을 추구하면서 그의 신체는 점점 한계(限界)를 드러내고 결국 몸과 마음의 고통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목표에 도달하려 합니다. 이러한 측면은 드러머로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혹은 경험했던 그 극한의 훈련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감정의 결합 - 드러머로서의 감정적 해방

위플래쉬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음악이 단순히 기술적인 숙련도(熟鍊度)를 넘어서 감정적 표현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앤드루는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적 해방(解放)을 경험합니다. 드러머의 관점(觀點)에서 보면 리듬과 타격은 단순한 기계적 행위(行爲)가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道具)가 됩니다. 특히 재즈와 같은 음악 장르는 감정의 자유로운 표현이 중요한 장르로 드러머는 단순히 기술적인 정확성(正確性)만을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타격(打擊)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영화 속 앤드루의 연주(演奏)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기술적 숙련(熟練)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표출(表出)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드러머로서 연주하는 순간 그 리듬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서 마음속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媒介體)가 됩니다. 위플래쉬는 이런 감정적 해방을 음악을 통해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앤드루가 느끼는 분노, 기쁨, 고통 등은 그가 드럼을 칠 때마다 강력하게 전달되며 이는 드러머로서의 자기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強調)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감정적 해방(解放)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줍니다. 감정적 표현은 종종 과도한 압박(壓迫)과 결합(結合)되어 드러머가 감정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손상(損傷)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위플래쉬는 이처럼 예술과 감정의 결합(結合)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자신을 파괴(破壞)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드러머의 희생 - 예술을 위한 대가

위플래쉬에서 앤드루는 결국 예술(藝術)을 위한 ‘희생(犧牲)’을 선택하게 됩니다. 드러머로서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는 관계, 가족, 심지어는 자신의 신체적 건강을 모두 감수(甘受)하면서까지 완벽한 연주(演奏)를 위해 노력합니다. 영화 속에서 앤드루가 ‘완벽’을 추구하면서 겪는 갈등과 고통은 예술(藝術)을 추구하는 드러머에게 사실상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최고의 연주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감당(堪當)해야 하는 희생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드러머로서 예술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정신적, 신체적 요구가 결합된 매우 현실적인 꿈입니다. 앤드루처럼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인정이나 물질적 보상을 넘어 자신의 한계(限界)를 넘어서는 도전이 요구됩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곳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代價)’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러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질 정도로 완벽한 연주(演奏)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예술가(藝術家)로서의 자아(自我)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위플래쉬를 드러머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술(藝術)의 끝없는 추구(追求)와 그로 인한 희생(犧牲)을 강렬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음악적인 완벽함을 넘어서 예술을 향한 집착(執着)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드럼을 통한 예술(藝術)이란 단순히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발산(發散)이자 자기 표현의 방식임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또한 예술(藝術)을 위해 치러야 하는 노력과 그 대가(代價)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위플래쉬는 드러머뿐만 아니라 예술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